-
[칼럼] 현수막이라는 이름의 '면허 받은 폭력'사회 2025. 12. 9. 10:50

[서드앵글]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것은 쓰레기만이 아니다. 때로는 글자도 흉기가 되어 거리를 어지럽힌다.
12월의 영등포 거리, 신호 대기 중 마주친 붉은 현수막은 시각적 폭력 그 자체였다. "집값도 못 잡아... 폭망 대책 철회하라!" 원색적인 배경 위에 굵은 고딕체로 박힌 저주 섞인 문구들이 행인의 시선을 강제로 낚아챈다. 정책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배설에 가까운 혐오의 언어들이다.
저 거친 텍스트를 보며 든 생각은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었다. 지극히 상식적인, 법적 형평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만약 내가, 혹은 우리 회사 직원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블로그에 특정인을 향해 저토록 근거가 빈약하고 악의적인 비난을 쏟아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십중팔구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고소당하고, 포털 사이트로부터 게시 중단 조치를 당했을 것이다. 온라인에서 일반 시민은 사실을 적시해도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면 처벌받는 엄격한 검열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왜 대낮의 대로변, 수만 명의 시민이 오가는 물리적 공간에서는 이토록 명백한 '혐오'가 '정당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거리는 법적 정의가 무너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2022년 여야 합작으로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은 정당에게 괴물 같은 특권을 쥐여주었다. '통상적인 정당 활동'이라면 신고도, 허가도 없이, 심지어 금지 구역에도 현수막을 걸 수 있게 만든 이 법은 사실상 정당에게 '욕설 면허'를 발급한 꼴이다.
내가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으려 전봇대에 붙인 전단지는 불법 광고물로 과태료 폭탄을 맞지만, 정당이 상대 진영을 "범죄자", "매국노"라 낙인찍는 현수막은 구청 공무원조차 함부로 떼지 못하는 성역(聖域)이 되었다.
이 기형적인 풍경은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닌 '글로벌 망신'에 가깝다. 표현의 자유를 헌법적 가치로 신성시하는 미국조차 공공 도로변(Public Right-of-Way)을 정치 선전의 장으로 내어주지 않는다.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유에서다. 프랑스는 지정된 '표현의 자유 게시판'을 벗어난 정치 현수막을 즉시 철거한다.
선거철도 아닌 평시에, 시민이 원하지 않는 정치적 소음을 강제로 시청하게(Captive Audience) 만드는 나라는 선진국 중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정당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주장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저 현수막에 담긴 것이 과연 정보인가, 아니면 소음인가?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와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선동 문구에서 국민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값은 '0'에 수렴한다. 이것은 알 권리의 충족이 아니라, 시민의 '보지 않을 권리'와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를 침해하는 폭거다.
지난달 행정안전부가 부랴부랴 '혐오·비방 현수막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현장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폭망", "무능", "범죄자" 같은 단어가 비방인지 정치적 견해인지 판단할 권한이 일선 지자체에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 스스로가 이 특권을 내려놓지 않는 한, 우리는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저 거대한 쓰레기를 눈으로 치워야 하는 고역을 겪어야 한다.
온라인 댓글창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엄격한 도덕과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자신들은 오프라인 광장에 숨어 법 위의 특권을 누리는 정치권의 이중성. 저 현수막이 말하고 있는 진짜 메시지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아니다.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는 정치권의 오만함, 바로 그것이다.
이제 시민들이 되돌려주어야 할 차례다. 거리는 정당의 사유지가 아니며, 우리의 시선은 그들의 배설물을 받아내는 쓰레기통이 아니다. 정당 현수막을 지정 게시대에만 걸도록 강제하고, 내용에 대한 책임을 일반 시민과 똑같이 묻는 것. 그것이 무너진 거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시작이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세계까사, 연말·신학기 수요 겨냥 학생 가구 최대 60% 할인 (0) 2025.12.09 농심, 트렌디한 ‘말차 라떼맛’ 담은 빵부장 신제품 공개 (0) 2025.12.09 겨울 집 꾸미기 고객 잡는 KB국민카드, 최대 100만원 경품 이벤트 (0) 2025.12.09 LG전자, 가산 R&D 캠퍼스 50년…글로벌 가전 혁신의 심장 (1) 2025.12.09 조세호,유퀴즈·1박2일 동시 하차 (1) 202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