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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영 통일부 VS 조현 외교부 충돌... 70년 헤게모니 싸움
    사회 2025. 12. 17. 16:12

     

    정동영 장관과 조현 장관

    [서드앵글]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을 두고 통일부와 외교부 간 갈등이 표면화되며 그에 따른 잡음이 커지고 있다. 두 부처 갈등에 대해 일각에선 정책 갈등 내지 이권 다툼으로 해석하는데 그보다는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우리 정치권 내 두 세력 즉 자주파와 동맹파 간 오래된 전략 철학의 충돌로 이해할 필요가 크다.

     

    지난 16일 외교부는 한미 대북정책 공조를 위한 정례 협의(공조회의·협의체) 첫 회의를 개최했다. 사실상 외교부 주도의 ‘대북·대미 협의 채널’을 출범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해당 회의가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 협력을 제약했다는 비판을 받던 ‘한미 워킹그룹’의 재판이 될 수 있다며, 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이어 “대북정책은 필요시 통일부가 미국과 별도 협의할 것”이라 밝혔다.

     

    통일부는 한반도 정책·남북관계는 헌법상 통일부의 고유 영역이며, 동맹과의 협의도 통일부가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외교부 및 외교·안보 라인은 북핵·제재·안보가 얽힌 대북 문제 특성상 외교·안보 전체 틀에서 다루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동안 한미 대북협의는 외교 라인이 담당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통일부 제안을 반대하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을 두고도 두 부처는 의견차가 상당하다. 지난 11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미북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한미 연합훈련 조정을 언급했다. “한미 연합훈련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북-미 정상회담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12월 7일 "한미 연합훈련은 한미동맹의 핵심이며, 이를 협상의 카드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한 바 있다.

     

    두 부처 갈등이 표면화되자 국민의힘 등 야권은 현 정부 내 자주파와 동맹파 간 노선 갈등이 우리 정부의 안보 난맥상을 낳고 있다 비난하고 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부처 중재에 나섰고 외교부와 통일부 모두 ‘정부 원팀’을 강조하며 갈등 수습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을 둘러싼 자주파와 동맹파 사이 오랜 노선 경쟁의 역사를 볼 때 합의점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적지 않다.

    반공 기조 아래 미국과의 동맹을 무엇보다 중요시 했던 이승만

    자주파와 동맹파, 무엇이 다른가

    자주파는 한반도의 운명을 한국인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당위성, 민족 자결권, 통일과 평화라는 가치를 우선시한다. 그렇기에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한국이 가져야 하며, 남북관계 개선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아울러 북한과의 적대 구조를 먼저 완화하면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경제협력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남북이 교류와 협력 확대를 통해 상호 신뢰를 쌓고 이를 제도화하면 안전보장까지 이뤄낼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한 현실적 과제로 2018년 문재인 정부가 체결한 9·19 남북 군사분야 합의의 정상화를 꼽고 있다. 나아가 남북이 법적 통일을 추구하되 현실적으로 남북이 평등한 주체로 인정하는 평화 공존 체제를 먼저 구축하자는 입장이다.

     

    이재명 정부에서는 정동영 통일부장관, 이종석 국정원장 등이 자주파 인사들로 분류된다. 또한 진보 정부 출신 전직 통일부 장관들이 대표적 자주파로 거론된다.

     

    동맹파는 중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강대국들 속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의 지정학적 약점을 고려하면, 미국과의 동맹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 보고 있다. 그렇기에 한미동맹이 한국 안보의 절대적 기초이며,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확고한 억지력이 선행돼야 남북 협상이 진행될 수 있다고 여긴다. 또한 이들은 한국의 국방과 안보 모두 미국과의 동맹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능력 증강과 미사일 위협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군사적 억지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북한의 비핵화 약속 없이는 제재 완화나 관계 정상화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동맹파에서는 과거 진보 정부의 포용정책이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만 초래했다고도 보고 있다.

     

    현 정부에서 대표적 동맹파로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조현 외교부 장관 등 외교부 라인이 꼽힌다. 보수 정권 아래 외교 라인들 또한 동맹파로 분류된다.

    누구보다 강하게 반공을 외쳤지만 자주국방에도 관심이 컸던 박정희

    반세기 넘게 대립해 온 동맹파와 자주파

     

    광복 후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면서부터 한국에는 동맹파와 자주파가 등장했다.

     

    시작 시점에선 동맹파의 우세였다. 이승만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을 중심으로 한반도 안보를 구축했으며,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 동맹파의 제도적 기초를 마련했다. 당시 미국은 6.25전쟁을 통해 한반도가 동아시아 지정학적 요충지임을 깨달았고, 냉전 체제에서 한국을 공산진영 억지력의 최전선으로 삼았다. 이 시기 한국은 자주성보다 생존이 최우선 과제였다.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경제난과 북한의 지속적 위협 속에서 미국의 군사·경제 지원은 필수불가결했다. 그리고 이는 냉전 내내 동맹파의 논리적 기초가 됐다.

     

    자주파가 본격 득세한 시기는 한국이 본격적인 경제 자립과 군사력 증강을 도모하기 시작한 박정희 정권 중·후기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보수 정권이었음에도 ‘자주 국방’을 표방하기 시작했고, 1972년에는 7·4 남북 공동 성명까지 발표했다. 또한 당시 학생 운동과 민주화 운동 속으로 ‘자주파’ 이념이 스며들어 갔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자주파는 외각이 아닌 중심부로 들어오게 된다. 당시 정부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이 자주파 논리를 가장 명확하게 구현한 사례였다. 햇볕정책은 북한에 대한 협력과 지원을 늘려가며 평화적 통일을 추구하자는 전략으로, 한미동맹은 유지하되 북한과의 접촉·협력·교류를 적극 추진하자는 균형 외교 성격도 보였다.

     

    김대중 정부를 이어받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금강산 관광 재개 및 개성공단 개발 등을 추진하며 이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유지·강화했다. 노무현 정부는 평시작전권은 물론 전시전작권 회수까지 추진하며 미국과의 관계 변화를 시도했는데, 이에 보수 진영으로부터 ‘한미동맹 약화’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이후 10년 간 이어진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부 시절에는 동맹파가 다시 위세를 떨쳤다. 이들 보수 정부는 햇볕정책을 포기하고 ‘비핵화 선행’ 원칙을 고수하며 한미동맹 강화에 주력했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북한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면서도 비핵화는 달성하지 못했다”며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직접 비난하기도 했다.

     

    자주파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전면에 등장했고, 2018년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삼아 남북 관계를 급진전시키는 성과를 이뤄냈다.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역사적인 9·19 군사합의가 체결된 것으론 이는 자주파가 주장해 온 ‘남북간 신뢰 구축 우선’ 논리의 실증 사례가 됐다. 반면 2019년 2월 열린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결렬되자 보수 진영과 동맹파에선 문재인 정부 나아가 자주파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직전 정부인 윤석열 정권에서는 동맹파가 다시금 집권하며, ‘한미동맹 강화’ 기치 아래 보수적인 대북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9·19 군사합의도 사실상 폐기했다.

    9.11 군사합의 체결 당시 남북 지도자와 실무진

    동맹&자주, 대립이 아닌 상호 보완적 정책

    한국 사회에서 자주파-동맹파 갈등이 수십년간 치열하게 펼쳐진 근본 원인은 분단과 냉전의 깊은 역사적 상처에 있다. 냉전 이후 많은 국가들이 양극단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했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이념 대립 구도 속에 있다. 이로 인해 동맹파의 ‘미국 선택’과 자주파의 ‘자주적 외교’는 단순한 정책 선택이 아니라 한국의 정체성을 둘러싼 투쟁으로 인식돼 왔다.

     

    여기서 주지할 점은 자주와 동맹 모두 저마다의 약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자주파의 경우 대화와 교류만으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역사적 교훈이 있다. 보수진영의 지적처럼 2019년 하노이 회담의 결렬이 이를 증명한다.

     

    동맹파의 경우 억지력만 강조하면 대화의 통로 자체가 막혀 협상의 기회를 놓친다는 딜레마를 내포한다. 또한 미국이란 외부 변수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 우리 문제를 두고 끌려만 다닐 수도 있다.

     

    이와 관련 한 국제문제 전문가는 “현 정부에서 동맹파와 자주파의 대립은 정부 구성 시점부터 어느 정도 예상이 됐다”며 “주의할 점은 우리 정부가 북한 문제에 있어 일관된 입장을 유지 못하는 것은 미국 등 외부 세력이 우리 정책을 신뢰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우리는 동맹파와 자주파 중 누가 맞고 틀린 지를 찾을 게 아니라, 그 중간에서 조율을 해야 한다”며 “북한에 대한 억지도 필요하고 대화도 해야 한다. 한국의 자주성과 미국과의 동맹은 상충이 아니라 보완적 관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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